필리핀 여행기 제 8부
- 바나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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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위대한 인간이여
초록의 절벽 위에
*바나우이 논을 본 나의 첫 느낌은 이런 시가 되어 나왔다. 윗글이 혹시 시라고 불리울 수 있다면 말이다. 위대한 자연의, 아니 인간의 작품 앞에, 나는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이면에 숨어 있는, 이 논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을 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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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윗 그림) 와 실제 찍은 사진(아래 사진)을 비교하면 현지 계단식 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바나우이 벼 논 지도. 아래: 호텔에서 본 실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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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어디까지 얼마를 걸어가야 할지 모르지만 걷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새벽 바람을 뚫고, 트라이시클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역이라는 팻말>
"Here we are!"(다왔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내려서 오른 쪽을 보니 과연 말로만 듣던, 바나우이 계단식 논이 나타났다. "야, 대단하구나. 대단해!"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경남 남해군에 다랭이논이 유명하다고 하여 가 본 적이 있지만, 이것은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하기야 유네스코 문화유산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남해군의 논은 그냥 논이다. 여기는 깎아지른 절벽에 폭이 좁은 논이 채곡 채곡 쟁여져 있었다.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사람이 만든 인공과 자연이 혼재한 미학을 본다. 먹고 살기 위해 한 톨이라도 더 쌀을 생산하기 위해,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던 옛 사람들의 노력이 눈물 겨웠다. 아래로 150 미터 정도의 계단 길이 나있었고, 거기에 개울이 흘렀다. 그리고 그 개울부터 가파르게, 내가 서 있는 곳 맞은 편 쪽으로 약 200 미터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면서 폭이 좁은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맞은 편 논에 가보기로 했다. 계단을 따라 50미터 쯤 내려가니 민가가 하나 나타났다. 닭이 여기저기 놀고 있고, 개가 짖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나는 맞은 편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Good morning. I am a tourist from Korea. Can I go there and take some photos?"(한국 관광객인데 저기 가서 사진 찍어도 될까요?
<맞은편 논 위에 있는 집: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 뒷편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농부: 겨울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고도가 얼마 높은 곳인가 알 수 있다.>
개울을 건너 올라가면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논두렁을 밟아보았다. 윗 논과 아랫 논의 논두렁의 높이가 5미터나 되어서 어지러웠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5미터 폭의 논이 있고 또 5미터 높이의 논둑이 있다. 이것이 끊임없이 연결되었으니 사실은 엄청난 낭떠러지다. 비가 오면 무너지지 않을지 논두렁을 유심히 살펴보니 차진 진흙이 찰고무처럼 엉켜있어서 아무리 비가와도 물이 그 속을 침범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수 천년 동안 그곳에 그렇게 있었나 보다. 어느 한 군데도 논두렁이 무너져 보수를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물꼬가 있기는 있으나, 논두렁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물만 흘러내렸다.
논두렁을 따라 산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그 위로 걸어 올라갔다. 등산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집이 한 채 나타났다. 닭, 개, 돼지, 그리고 이름 모를 가금류가 마당에서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다.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아 집안으로 들어가니 한 아저씨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좋으니 찍으라고 했다. 방까지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았다. 4-50 년전 강원도 시골 마을을 보는 듯 했다. 걸려진 옷과 집의 모양에서 그리고 우연히 길을 걷던 소년에게서 그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덕 위의 민가에서 내려오다가 만난 아이>
집 앞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마치 그 산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듯이 보였다. 잠시 관찰한 나는 어떻게 해서 이 계단식 논에 물을 대는지 알 수 있었다. 즉, 산의 위쪽 계곡에 댐 비슷한 것을 만들어 그 물을 오른쪽 산 중턱으로 물길을 만들어 흘려보낸다. 그 물은 산 전체를 물꼬를 따라 줄줄이 흘러내리는 구조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큰 산이니 물이 마를 리 없고, 그 물이 산 중턱을 돌아 아래로 흐르니, 물 걱정 없이 농사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필요한 물만 오른쪽 산 중턱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댐에서 계곡으로 흘러 보내면 되기 때문에 물 걱정은 필요없는 천혜의 농토인 것이다. 이것은 그곳을 관찰한 후 나의 추론이다. 실제는 가보지 않아 알 수 없다.
농부들이 좁은 논두렁을 다니다가 중심을 못잡아 아래로 떨어져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를 몰고 가기는 힘들어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서 벼를 수확하여 집으로 운반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불가사의했다.
다시 방향을 틀어 되돌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참을 내려오니, 어디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이 내려오는 것을, 그리고 저 아래 내려 간 것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뒤에도 아이들은 4-5 그룹이 지나갔는데, 옛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진을 찍으니 어떤 아이들은 "Give me money, give me money"라고 했는데, 돈을 조금 주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은 돈맛이 들렸는지, 한참을 가다가 다시 와서 또 돈을 달라고 했다. "야, 너희들 돈뿐이 모르냐?"라고 한국말로 호통을 쳤는데,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좁은 논둑길로, 마치 개에게 쫓긴 씨암탉 도망치듯 내뺐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
<젊은이가 사색을 하다가 집에 들어가서 가구를 꺼내와 전시했다.>
<계단식 논>
트라이시클에서 내린 지점에서 나는 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view point라고 써 있는 지점, 또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은 지점에서 멈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한 젊은이가 먼 산을 바라보며 한 숨 짓는 듯이 앉아 있다가 집으로 들어가더니, 손으로 만든 가구를 집밖에 꺼내어 전시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팔아서 장사하는 사람인 듯 했다. 판자로 지어진 작은 집에서 앉아 있는 할머니와 아이들이 보였다. 길 옆에서 노래하며 빨래하는 처녀들도 보였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 신문지를 깔아놓고 죽기를 바라는 개가 길 옆에 놓여있기도 했다. 사는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걸어 내려오면서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운데 개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만들어 올라간 저 논을 보라. 대대손손이 만들다 보니, 산 전체가 논이 되었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근처의 바타드, 본톡 등 그 일대 전체가 그들 조상의 피나는 노력의 댓가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이 땅을 개간하기 위해 이들이 흘렸을 땀방울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 계단식 논은 수 천년에 걸쳐서 이후가오라는 족이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 아래 부분을 논으로 만들고, 그 후 그의 아들이 그 논 위에 또 산을 깎아서 논을 만들고, 대대 손손이 땅을 깎고 깎아서 만든 것이다. 논둑의 높이가 5미터로 해발 1500미터까지 산을 깎아 논을 만든 지역도 있다고 하니, 쌀에 대한 그들의 집념, 아니 삶에 대한 그들의 피나는 여정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최소한의 면적을 최대한도로 이용하여 굶지 않고 살려는 그들의 노력이, 지금은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만들어 관광객을 끌어들임으로써 자손에게 먹을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후손은 지금도 여전히 이 논에 농사를 짓고 산다. 이들이 사는 곳은 이들 이름을 따라 이후가오주라고 부른다. 이들의 피와 땀이 얼룩진 이 산길을, 단지 사진과 관광의 자료로만 인식하며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한 없이 죄스러움을 느꼈다.
내려 가도 내려 가도 끝이 없기에 길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How far is it from here to downtown?"(여기서 중심가까지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으니, "You are already in downtown. Downtown is here."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 내가 큰 도시라고 생각했던 바나우이는 우리나라의 읍 소재지에 불과한 마을이었다.
<하파오까지 500페소를 받고 세 시간 트라이시클을 운전한 젊은이: 한국인이 올 때는 꼭 자기를 찾아 달라고 말하면서 그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바나우이 중심가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트라이시클이 약 20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트라이시클 운전사가 아까부터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Hapao라는 데에도 유명한 논이 있으니 자기 차를 타고 가자고 한다. 지도를 보니 비포장도로로 16키로를 가야 되는 곳이다. 나는 점심을 먹고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식당에 손님은 나 하나밖에 없었는데, 무슨 요리를 주문할까 하다가 채식으로 주문을 했다. 고기는 향이나 맛에 따라 먹지 못할 수도 있지만, 버섯이나 채소를 먹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주문한 음식은 상당히 맛이 있어서, 저녁에도 그 집에 와서 또 주문해 먹게 되었다.
내가 나오는 것을 총쟁이처럼 지켜보던 그는 또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며 하파오에 가자고 졸라댔다. 나는 트라이시클을 3시간 빌릴 조건으로 500페소를 주겠다고 했더니, 그는 너무 반가워했다. 좀더 깎을 걸 하다가, 미련을 버리고 구경이나 잘하자고 마음 먹었다.
좁은 자갈밭을 그는 운전도 잘했다. 비가 와서 끊어진 길을 잘도 돌아갔고, 집채만한 바위를 잘도 피해갔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멈추어서 아이들을 찍으라고 했다. "Children,look here. Here is a tourist from Korea.(얘들아, 여기봐라. 여기 한국 관광객이다."라고 내가 할 말을 그가 대신 해 주었다. 한 시간 정도를 가다가 입장료를 지불하고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곧 논이 나타났다. 낮은 논 계단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여기 논은 한국의 논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나도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여기 논은 나에게 그렇게 큰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단지 바나우이와 차이가 있다면, 논뚝이 모두 돌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근처에 돌이 많으니 환경을 잘 이용한 셈이다.
<하파오 가는 길>
나무 밑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의 트라이시클 운전사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온 관광객을 태우고 온 운전사인데, 그 싱가프로인이 저 아래 논으로 구경가서, 싱가폴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싱가포르르인은 혼자 와서 필리핀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왜 나는 혼자왔는데도 필리핀 애인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지 물었다. 여기에 혼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 보통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다음에 올 때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래볼까하고 반쯤은 마음을 먹었다. 그 옆에는 전직 교사라는 할아버지가 벼 알을 벼에서 털어내고 있었는데, 능률적인 면에서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탈곡기가 아닌, 칼로 하나하나 곡식을 뜯어내는 모습에서 내가 홧병이 날까 두려웠다.
<바나우이의 하늘>
다시 바나우이로 돌아왔다. 여관을 잡아야 했다. 여기서는 여관을 lodge라고 했다. Sanafe라는 여관에 들어가서 물으니 dormitory는 200페소(5000원), 방은800페소(2만원)라고 했다. 나는 dormitory로 가보았다. 지하에 침대가 15개 정도 놓여있었고,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200페소를 지불하고 위에 올라와 생각하니 공동화장실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 지하라 음침한 것도 마음에 찝찝했다. 다시 와서 주인 Susan과 상의해서 600페소로 깎아 방을 잡아 이층으로 올라갔다. 짐을 방에다 두고 밖으로 나왔다. 읍사무소 앞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무슨 무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 무슨 무용대회가 있다고 했다. 그 옆에는 내일 무용에 쓸 물건을 학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 내가 카메라를 들이다니 더욱 열심히 연습을 했다. 계속 찍어 댔더니 그들은 목숨걸고 연습했다.
<무용대회에 사용할 물건을 만들고 있다.>
<무용 대회 연습>
동네를 한 바퀴 돌 생각으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마침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큰 아이들은 농구를, 작은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비슷한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구경하면서 옆에 있는 아이에게 영어를 해보았는데, 지진아인지 몰라도, 영어가 서툴어서 답답했다.
밖으로 나와 길을 걸어가는데, 할머니가 옷감을 짜는 것이 창 틈으로 보였다. 잠깐 보다가 갈려고 하는데, 반대편 집에 있는 아저씨가 들어가 보아도 된다고 했다. 들어가니 할머니와 손녀 딸이 한 조를 이루어 G-string을 짜고 있었다. G-string은 남자들이 두 허벅지 사이에 감아서 팬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수건의 일종이다. 손녀와 하루 종일 짜면 3일에 하나 정도를 짜는데, 하나에 5000원정도 한다고 했다. 이것을 짜기 위해 손녀 딸은 서서 바가지에 실을 담아 계속 앞 뒤로 왔다갔다 했고, 할머니는 그 실을 엮어서 G-string을 만들고 있었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그냥 왔지만, 하나 사주지 못한 것이 그 뒤 내내 아쉬웠다. 그것보다는 다른 애들은 밖에서 놀고 있는데, 할머니가 돈버는 것을 돕기 위해 하루 종일 서서 왔다갔다 해야하는 그 아이가 애처로웠다.
<G-string을 짜고 있다.>
내가 머문 Sanafe라는 여관 주인은 여자로 몸이 건장하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아주머니(할머니)였다. 혼자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지 내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자기 딸과 아들 이야기를 한 없이 늘어놓았다. 그 집에 있는 컴퓨터로 나의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니 그녀는 놀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특히 일본의 혹까이도에서 찍은 사진으로 동영상 만든 것이 내 홈페이지에 있었다. "백지영의 사랑하나면 돼"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혹까이도의 꽃밭이 찍힌 사진을 나열한 것이다. 그것을 보더니 그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그녀는 집에 들어가더니 사진을 한 다발 들고 나와서 사진을 설명하면서 또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지는 해를 배경으로 베란다에 놓여있는 꽃이 역광으로 아름다워, 몇 장을 찍었다. 내가 Susan의 사진을 찍어준다고하니 그녀는 젊었을 때, 취했을 포즈를 유감없이 취해주었다.
<내가 묵은 사나페 산장>
<사나페 식당>
그 집에는 필리핀인 몇 사람이 묵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술만 마셨다. 네델란드에서 온 대학생이 또 한 명 묶고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휴가를 맞아 놀러 온 학생이었다. 그는 여행 책을 읽다가, 소설을 읽다가,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또 세 명의 유럽 여자들이 있었는데, 30대 여성들로 보였다. 그들과 맥주 한 잔 했다. 그들은 프랑스의 어떤 지방에서 왔는데, 서로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서 키가 좀 작고 날씬한 여자가 있었는데, 아주 귀엽게 보였다. 귀고리도, 목걸이도, 검은 블라우스도 멋있어 보였다. 그녀도 나에게 흥미있는 듯이 보였는데, 갑자가 키 큰 여자가 쇼핑하러 가자고 했다. 나가면서 귀여운 여자는 나중에 맥주 한 잔 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진짜인줄 알았다.
<내가 묵은 사나페 산장의 주인 수잔>
아무리 기다려도 한 번 나간 여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울화통이 터져서 밖으로 나왔다.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며 어디 적절한 술집이 없는지 알아보았다. 허름한 2층집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삐거덕 거리는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3인조 밴드가 팝송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서너 테이블에 다른 팀도 앉아 있는데, 모두 안주 없이 맥주만 몇 개씩 시켜놓고 담배만 한 없이 피워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쪽 테이블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내막은 알 수 없으되, 소리를 지르며 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웨이트리스가 나타나더니 무엇이라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웨이트리스를 보니 민도로 섬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게이였다. 그런데 이 게이는 용감한 게이였다. 머리를 뒤로 묶고 떡벌어진 가슴에, 군인이 신는 워커를 신었다. 난장을 피우던 손님은 그녀에 의해 끌려 나갔다.
잠시 뒤에 술 취한 청년 몇 사람이 나타나 내 앞으로 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술만 마셨다. 그들은 내 앞에 있는 창문을 열더니, 창문 밖으로 침을 내 뱉었다. 물방울로 변한 침의 일부가 나에게로 날아왔다. 그리고는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게이에게 창문에 묻어 있는 침을 닦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리를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계속 그 자리를 사수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똥고집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있다가 내 앞 테이블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몇 명이 또 나타났다. 아주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사람들이었다. 돈을 꺼내 웨이터에게 주면서 돈을 여기저기 바닥에 떨어뜨렸다. 술도 반은 마시고 반은 바닥에 흘렸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또 싸우기 시작했다. 왜 싸우는지 몰랐지만, 싸우는 당사자들도 왜 싸우는지 모르고 싸우는 듯했다. 여지 없이 아까 그 게이 웨이트리스에 의해 또 끌려 나갔다.
잠시 뒤에 처음 끌려나간 싸움꾼이 어디서인지 꽃 다발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 꽃다발을 게이에게 주었다. 그 게이는 그런 꽃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듯이,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서 그녀는 맥주를 몇 병 갔다가 꽃을 건네 준 사람에게 갔다 주었다. 게이가 돈을 받았는지 무료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서 잠잠해졌다.
<계단식 논의 설명: 논두렁을 이으면 지구 둘레의 반이 넘는다는 표현이 있다.>
내 옆에 있던 테이블의 부부는 아까부터 노래가 나올 때마다 앉은 자리에서 계속 엉덩이를 돌려대며 춤을 추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도 이제 술이 어느 정도 취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취한 김에 밴드 앞에까지 와서 아무 이유도 없이 팁을 100페소(2500원) 주었다. 그리고 Let's twist again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그 노래 뿐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비틀비틀 춤을 추었다.
그 때 꽃다발을 갖다 준 그 사람이 또 유리병을 깼다. 그리고 한참 옥신각신했다. 그 게이 웨이터는 주방에 들어가더니 아까 그 꽃다발을 가져왔다. 그 꽃다발로 그의 면상을 내리쳤다.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웨이트리스는 그의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갔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의식을 잃은 사람이 계단에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요금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개미새끼하나 지나가지 않았다. 여관으로 오니 큰 문은 닫혀있고 작은 문만 열려있었다. 종업원 아주머니가 컴컴한 홀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Oh, you are not sleeping. What are you doing in the dark?(잠 안자고 이 어둠 속에서 뭐하세요.)내가 물었다. Oh, nothing. I'm just enjoying myself(그냥 놀고 있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Enjoy doing what? (뭐하면서 놀아요?) 내가 물었다. Doing nothing.(아무 것도 안하면서요.). Sometimes doing nothing is the most important thing.(가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녀는 철학자인양 말했다.
나는 터버 터벅 내 방으로 올라왔다. 웬지 모르게 하루가 길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건가라고 생각하니 참 이상도 했다. 나는 본래 어떤 사람인가?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술을 먹고 그리고 이렇게 들어와 잠자는 것이 나인가? TV에서는 필리핀 판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상영되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이 본래 저런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고는, 지금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TV를 껐다. 어디서 닭이 울지 않을까 닭울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적막함만이 내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항상 이렇게 살다 가는거야. 아니야, 오늘이 내일인거야. 아니야 오늘 내일 따질 것 없어. 인생이란 본래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후회수러운 것을 뒤집어 보면 그게 만족이야. 너무 따지지 마. 나는 나를 위로했다. 찬 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닫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가끔가다 미친 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가끔가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인생에서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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