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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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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2일 아침 9시에 홍콩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창공을 날고 있다. 아침 9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일어났고, 간단히 세수만 하고 아침 6시에 호텔을 나섰다. 떠날 때는 말없이 미련을 두지 말라고 하지만, 떠나야겠다는 마음과 섭섭하다는 마음이 함께 일어나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니리라.
<베트남 행 항공기에서 본 바다>
비행기 맨 뒷 좌석이 배당되었다. 비행기 탈 때마다 항상 중간에 앉아, 밖으로는 비행기 날개만 보이더니, 오늘은 제법 바다가 잘 보인다. 갑자기 화려한 색의 산호초라고 생각되는 것이 저 아래 보인다. 아마도 수심이 얕은 바다일 것이다. 화려한 색을 뽐내다가 곧 사라졌다.
<베트남에 가까이 왔다.>
잠잘 사이도 없이, 베트남 시각 10시 30분에 호치민에 도착하였다. 홍콩에는 좀도둑과 사기꾼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여러 번 읽었으므로 절대로 속지 않기로 다시 한 번 굳게 마음 먹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더운 기운이 후끈하다. 앞 사람을 따라 입국 심사를 받는다. 나는 지금까지 어디를 가든 그냥 통과를 했지 영어로 따져 묻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그는 내가 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가르친대로 물었다.
심사원: What's the purpose of your visit?(방문 목적은?)
그 사람이 왜 뜬금없이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Congratulations! 했다가 다시 고쳐서 Happy birthday!라고 말하고 통과했다. 내 뒤를 따라오는 아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통과 시켜 주었다. 이 놈이 오늘 아침 생일 상을 받지 못해 심술이 났나? 원 참 내.
밖으로 나오니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15000원을 내라고 했다. 우리는 무조건 미터기로 가자고 했다. 한참 찜찜하더니, 그러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차에 태웠다. 차를 타고 가면서 운전수의 인상이 좀 험상궂어 보였다. 책에 나온대로 Vinasun 택시를 탈 것을 잘못했나라고 내가 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내리니 약 8000원 정도 요금이 나왔다. 그는 무슨 영어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돈을 더 내라고 했다. 아마도 parking, tax 뭐 이런 단어들이 들린 것으로 보아, 주차비나 세금을 더 내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15,000원을 주었다. 그는 더 내라고 했다. 나도 승질이 나서 소리를 질렀는데, 그도 소리를 질렀다. 안내책에 절대로 베트남 사람과 싸우지 말라고 되어 있어서, 갑자기 다른 놈들이 떼거리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5000원을 더 주었다. 그는 갑자기 웃으면서 Thank you 하면서 사라졌다. 결국 8000원 요금을 2만원을 주고 끝났다.
택시가 가고 나니 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수업료를 지불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이 사건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길을 건너려는데,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절대로 멈춰주지 않았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호치민의 거리를 한 번 건너려면 죽을 각오를 여러 번 해야한다. 절대로 보행자를 보고 차나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는다. 보행자가 알아서 겨야 한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길을 건넜다.
예약한 Yellow house hotel을 찾으니 아무도 몰랐다. 벌써 12시가 되어가는 중이다. 날은 더울대로 더웠다. 여행사가 눈에 띄었다. 가서 물어보니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찾아가니 yellow house hotel은 맞는데, 번지수가 달랐다. 적어도 같은 이름의 호텔이 2개 이상인 것이다.
<내가 묵은 여행자의 거리 브이비엔>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라는 것이다. 인도는 이미 주차한 오토바이가 막고 있어서, 외줄을 타듯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어야 되었다. 나는 배낭을 메었으니까 문제가 없었지만, 아내는 여행가방을 끌고 갔으므로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때마다 가방에서 덜커덩 소리가 났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 보아도 Yellow House hotel은 없었다. 베트남 사람은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길가에서 맥주를 마시는 외국인에게 물었더니,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한 참을 가니 또 나타나지 않았다. 가게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우리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했다. 신경질이 나서 한 번만 더 물어서 못찾으면, 예약해둔 호텔을 무시하고 새로운 호텔을 잡을 마음을 먹었다.
다시 돌아서 길을 가르쳐준 외국인이 있는 곳까지 다시 왔다. 옆에 있던 베트남 사람이 여기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바로 옆이었다. 눈을 들어 보니 큰 간판에 아주 작은 글씨로 yellow house hotel이라고 쓰여있었다. 여기구나!
<내가 묵을 Yellow house hotel: 간판이 이렇게 작아서 찾는데 죽을 뻔 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인쇄해간 예약 증명서를 보여주니, 301호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여권을 달라고 했다. 베트남에서는 호텔을 예약할 때 여권을 맡긴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으므로 그녀의 지시대로 따랐다. 한참을 올라가니 3층 방이 나왔다. 여기는 영국식이서 3층이 우리 나라로 치면 4층이었다. 하여튼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선형의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는데 힘깨나 들었다. 다른 외국인들은 더 큰 짐을 지고 내려오고 있었다.
방을 보니 괜찮은 방이었다. 물론 홍콩의 방에 비해서다. 길가여서 그런지 소음은 대단했지만, 당연시 여겼다. 짐을 놓고 세수를 하고 쉬면서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아내 나름으로 긴장해 있는 모습이다. 긴장을 풀기 위해 쓸데 없는 말을 하면서 아무 것이나 닥치는대로 무엇인가를 먹었다. 아마 쵸코파이도 먹고, 바나나도 먹었을 것이다. 멸치도 먹고 빵도 먹었을 것이다.
<호치민 중심부: 빨간선이 추천 도로. 파란선이 내가 실제 다닌 거리. A: 벤탄 시장.
한 참을 쉬다가 3시쯤 되어서 시내 구경을 나섰다. 공항에서 나올 때, 나누어 준 지도를 가지고 직접 걸어 다녀 보기로 했다. 보행 시 가장 큰 문제는 도로를 건널 때 문제다. 건널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건널목이 있다해도 신호를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죽기를 무릅쓰고 걸어야 한다. 또한 오토바이가 너무 많아 매연이 심각하다. 필리핀의 마닐라 시내의 매연과 거의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여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걸어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광객과 물건 운반인들만이 걸어다니는 것 같았다.
처음 간 곳이 호치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빈탄 시장이다. 건물 안에 좁은 통로를 제외하면 사람과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날이 덥고 사람이 많아서, 마치 여름에 병든 닭이 힘 못쓰듯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였다. 어떤 물건의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택도없이 비싼 값을 불렀다. 그냥 오려고 하니, 반값으로 깎아 준다고 하는 것을 그냥 나왔다.
<호치민 시청> 다음은 시청사다. 시청 앞에 호치민 석상이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금 걸어가니 성당이 나왔다. 만원이어서 밖에서 예배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옆에서 모델 사진 촬영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기운이 나서 몇 방 눌러 댔다.
<노틀담 바실리카 성당>
<성당 옆에서 모델 촬영>
<모델>
우체국이 옆에 있었는데, 구경거리로 나와있다. 왜 유명한 건물인가 보았더니 1891년 프랑스 식민 정부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란다.
통일궁에 갔었으나 이미 시간이 되어서 문이 닫혀있었다. 그때 세롬을 타고 한 젊은이가 다가와서 꼬리안이냐고 묻더니 말을 걸고 어쩌고 하여 하는 수 없이 그것을 타게 되었다. 처음에는 1달러로 전쟁 기념관까지 가기로 했다. 그 사람과 그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우리 둘을 데리고 갔다. 전쟁 기념관에 들어갔다가 사진 몇 방찍고 나왔는데, 근처에 무슨 사찰이 있다고 했다. 거기까지 2 달러라고 했다. 사찰에 들어갔다 나오니, 거기에서 얼마를 더 가면 멋있는 사이공강이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데 6달러라고 했다. 얼마나 끈질기게 달라 붙는지 환장할 정도로 달라 붙었다. 우리 민족의 특성이 은근과 끈기라고 고등학교 때 배운 것 같은데, 이것은 무슨 시멘트 바닥에 껌보다도 더 악착같이 달라 붙었다. 이런 끈기로 싸웠으니 온갖 최신식 무기와 고엽제로도 미군이 베트콩을 공격해도, 결국은 당해내지 못하고 패퇴했나 보다. 혀를 내둘렀다.
<세롬을 타고 간다>
전쟁박물관도 그리고 이름 모를 사원도 큰 감명은 주지 못했다. "음, 이런 것이 있었구먼" 하는 정도의 건물이었다.
셀롬을 타고가면서 시내를 구경하는 것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오토바이 사이를 기가 막히게 뚫고 지나가는 저 솜씨라니! 자전거 뒤에 매달려 있는 막대기로 브레이크를 밟는 듯 했다. 그는 또한 내가 알기 어려운 영어로 사찰의 내부를 설명했다. heaven(하늘)을 "히브"라고 발음했고, male(남성)을 "메유"라고 발음했다. 길을 가다가 보니 신기로운 것이 있다. 아무데서나 길 옆에 의자하나를 갖다 놓고 머리를 깎고 돈을 받는 이발사다. 물론 씻어 주지는 않고, 털어주면 끝이다.
사이공 강가에 도착했다. 그는 나보고 10달러를 달라고 했다. 나는 절대 줄 수 없다고 말하고, "6달러× 2명 =12 달러"를 지불했다. 끝까지 더 달라고 하는 것을 그것만 주고 도망치다시피 하여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조금 따라 나오다가 멈췄다. 아, 지독한 인간들이여! 내돈 내고 내가 타고 왜 도망치나? 그런데 조금 지나고 생각해보니 정말 재미있어서 아내와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본래 이 나라가 그런 나라인 것을 어쩔 것인가? 1000원짜리 물건을 3000원 불렀다가 1500원에 파는 나라. 6달러에 계약해 놓고 목적지에 가서는 10달러 달라고 하는 나라. 이것도 하나의 문화이기에, 내가 이 문화를 욕할 것이 아니라, 빨리 여기에 적응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이공 강>
시커먼 물이 흐르고 있는 사이공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키스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커먼 물인데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우리는 근저 야외 카페에 가서 맥주 한 병씩 마셨다. 일인당 20 달러에 두 시간 배를 타고 뷔페식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 다음날 오기로 하고, 시내로 걸었다.
안내책에 나와 있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해산물 집"인 미스 사이곤이라는 집에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랍스터를 시켜 먹으려는데 우리돈 15만원이었다. 이것이 저렴한 집인가? 기가 찼다.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먹은 값의 2-3배는 되는 듯했다. 우리는 새우의 일종인 prawn을 5만원에 시키고 밥 한 공기와 맥주를 몇 병 시켰다. 그리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할 일 없는 종업원 세 명이 우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심부름을 해댔다. 그들은 심부름을 시키면 시킬수록 좋아하는 듯 했다. 가지고 간 홍삼 캔디를 하나씩 그들에게 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 해댔다.
<미스 사이곤이라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
<미스 사이곤이라는 식당의 음식>
집으로 택시를 타고 왔다. 비나순 택시였다. 안내책에 비나순 택시를 타라고 되어 있었다. 집 근처에 내리니 여기가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여행자 골목이라고 붙여진 이 브이 비엔 골목은 유럽인들 특히 독일인, 핀란드인, 노르웨인들로 점령당했다. 우리 호텔 바로 옆에 그리고 맞은 편 쪽에 맥주 집이 있었다. 베트남 사람이나 동양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홀이 가득 차서, 밖에 길을 따라 수없이 의자를 갖다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도 한 번 끼어 보려고 했으나, 자리가 없어 서성이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있으니 밖에서 술먹고 떠드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옆방에서 따발총을 난사하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우리가 술이 취하지 않았다면 아마 잠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의지의 한국인으로 모든 역경을 참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리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외쳐야 베트콩을 당해낼 수는 없겠지만서도 ---
<계속> <2009년 3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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