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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제주 올레 5(Jeju Olleh 5)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9. 23:15

제주 올레 5

(8박 9일 간의 제주도 도보 여행기)

 

2009년 3월 17일이다. 제주에 온지 벌써 7일째다. 그 동안 1, 2, 3 코스와 4코스 반, 그리고 우도를 도보 여행했다.  4, 5 코스는 나중에 다시 와서 걷기로 하고, 오늘은 기분 전환으로 서귀포 시내 코스가 들어 있는 6, 7, 8 코스 중 어느 하나를 걷기로 했다.

 

 

일찍 황토방을 나와 일주도로에서 서귀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가 오더니 다른 사람과 합승하여 5000원에 서귀포까지 가자고 했다. 나는 만원에 풍림 리조트까지 가기로 합의하고 택시를 탔다.

 

 

풍림리조트는 앞날을 내다보고 올레꾼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곳인 듯 했다. 5인용 콘도에 6인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서, 일인 당 2만원의 숙박료를 받고 있었다. 아직 광고가 덜 되어서 그런지 여기에서 2 박을 했는데, 첫날, 둘째날 모두 4인이 묵었다. 여기의 좋은 점은 각 출발 지점까지 버스로 데려다 주고, 데려 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간단한 아침 식사도 제공한다. 바나나와 빵 그리고 우유 한 잔인데, 아침 식사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7코스 지도. 7코스 중간 지점인 풍림리조트로부터 걷기 시작했다. 풍림리조트로부터 월평까지는 약 6키로다. >

 

 

 

 

<8코스 지도. 7코스에 이어 8코스를 하루에 완주했다. 8코스인 월평포구에서 대평포구까지는 약 17키로다. 위 두 코스를 합하면 3월 17일 걸은 거리는 약 23키로다. >

 

 

큰 가방을 프론트에 맡기고 간단한 배낭을 메고, 7코스 중간에 있는 풍림리조트를 출발한 것은 10시 경이다. 나는 풍림리조트에서 걷을 수 있는 곳까지 걷다가 기력이 떨어지거나 해가 지면 돌아오려고 생각했다.

 

 

 

시작은 다른 코스와 큰 차이가 없는 그런 코스였다. 왼쪽으로는 철석이는 바다와 오른 쪽으로는 농장이나 물고기 양식장이 이어진다. 바람도 어제와는 달리 잔잔했다. 한 마디로 걷기 좋은 날씨였다.

 

 

 

 

<파를 다듬는 할머니>

 

 

올레길을 걷다가 느낀 점은, 제주도 사람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라고 내가 인사를 하면 "예"가 대답의 전부다. 이것은 한 두 번 겪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경우에 그랬다.

 

 

그래서 한 참을 걷다가 길에서 파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할머니 왈, 제주도 사람은 절대로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은 한다. 그러나 말은 먼저 걸지 않는다." 이것이 할머니 말씀의 요지다. 그러면 외부인이 말을 걸면 싫어하는지 내가 물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걸면 대답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지만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아요."가 할머니의 대답이다. 말이 나온 김에, 쉬기도 할 겸 할머니와 좀더 이야기했다. 할머니의 남편은 몸이 아파 집에 누워있다고 했다. 이유도 없이 슬금슬금 아프더니 이제는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다고 했다. 자식들은 모두 집에서 나갔다고 했다. 농촌 어디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리라. 그러면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 말은, "늙으면 서러우니, 절대 늙지 마소."이다. "예."하고 나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저러니까 "노세, 노세 젊어 노세"라고 했겠지」라고 생각했다.

 

 

<월평 포구 바로 옆에 있는 바위. 몇 사람이 낚시를 한다>

 

 

7코스 종점인 월평 포구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아 11시 반쯤 도착했다. 포구 옆 바위에서 몇 사람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절벽 위쪽으로 길이 나 있어서, 야자나무 숲을 뚫고, 다시 큰 길로 갔다가 다시 바다로 가는 길이다.

 

 

 

 

<유명한 마늘 밭.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가운데 좁은 물길이 올레길이다.>

 

 

얼마 정도 가면 마늘밭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 마늘밭이다. 마침 점심 식사 때가 되어서 약 열 명의 농민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방해가 되어 미안했으나, 농민들은 길가는 사람에게 길을 막고 있어서 오히려 자기들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진에서 보듯이 마늘밭 사이에 나 있는 조그만 물길이 바로 올레 길이다. 이 마늘밭 코스는 제주 올레 코스 중 가장 인상적인 길 중의 하나다. 여기를 지나면 또다시 마늘밭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마늘밭 가장자리를 걸어서 한참을 간다.  

 

 

 

 

<무엇이 이 사람을 뜨거운 뙤약볕 아래 꽹과리를 치게 만드는가?>

 

 

끝없이 펼쳐진 마늘밭 가운데로, 때로는 가장자리로 나 있는 올레길을 지나면, 나무 계단이 나온다. 나무 계단 너머에 넓은 검은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에 한 사람이 뜨거운 햇볕에도 불구하고 부채를 병품삼아 펼쳐놓고, 음식 상 앞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염불을 모두 암기하지 못하는지 연신 옆에 있는 책을 들여다 본다. 무당인지도 모르겠다. 운명인지 팔자인지 알 수 없다. 좋아서 하는 일인지,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중년을 이미 넘어선 나이로 보이는 그는, 뜨거운 태양을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종교, 미신, 개성, 운명, 팔자, 족쇄, 귀신" 등 머리 속에 쏟아지는 단어를 잠깐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다.

 

 

 

1시 20분에 대포 포구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음식점의 음식값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군데를 제외하면 보통은 만원부터 시작이다. 회덮밥을 먹기 위해 물어물어 찾아 간 곳이 대포항에 있는 대포 어촌계 횟집이다. 넓디 넓은 2층에 손님이라고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게 바로 나다. 자기들끼리 떠들고 나는 혼자 회덮밥을 시켜 먹었다.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냥 먹었다. 말 한 마디 없이 음식을 주고, 나도 말 한 마디 없이 음식을 먹었다. 마실 물도 갖다 주지 않아 내가 떠다 먹었다. 이렇게 불친절하니 손님이 없지, 내가 나에게 한 소리다.

 

 

 

 

 

<주상절리(柱狀絶理 : "주상"은 "기둥 모양", "절리"는 "갈라진 금"이란 뜻이다.>

 

 

1시 40분에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올초에도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신기한 주상절리다. 주상절리의 둥근기둥도 아름답지만, 주변의 바닷물의 색은 감히 표현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쪽빛이다. 한 척의 배가 다가와 더욱 아름다운 구도를 만들어 주었다. 외국인들이 원더풀을 연발하였다.

 

 

 

 

<아름다운 물빛. 영월에 있는 동강의 쪽빛이 그러렸다.>

 

 

 

 

 

<주상절리>

 

 

 

 

<역시 주상절리의 아름다운 바다 물빛>

 

 

 

주상절리에서 바닷가를 따라서 계속 가면 아름다운 호텔이 나온다. 식당이나 호텔 방 등 거의 모든 건물이 전통적인 한옥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가 처음 이곳을 통과하면서 느끼는 것은 "세상에 이런 호텔도 있었구나!"였다. 앞으로는 아름다운 제주 바다가 보이고 그 옆에는 요트 몇 척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나무 아래 시원하게 차려진 탁자와 의자가 차 한 잔 하지 않고는 떠나지 못할 분위기로 만든다. 부자들은 이런 곳에서 이런 곳을 보며, 그에 걸맞는 음식을 먹고, 또 그에 걸맞는 파티를 벌리겠지. 언젠가 어떤 사람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소위 상위 몇 퍼센트에 드는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면, 인생이 허무해서 살 맛이 나지 않는다고. 사실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말에 수긍이 갔다.

 

 

 

<씨에서 호텔의 야외 휴식장>

 

 

 

<씨에서 호텔 옆의 요트장>

 

 

 

 

 

<중문 돌고래 쇼장 옆의 아가씨>

 

 

돌고래 쇼장이 있는 중문해수욕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였다. 관광버스와 자가용이 즐비하게 정차해 있었다. 돌고래 쇼장 옆에 있는 아가씨와 사진 한 방 찍었다. 그 옆에는 귤을 파는 아줌마가 두 명이 있었다. 귤 한 보따리를 2000원 주고 사서 먹고 있는데, 그 옆에 두 주먹만한 노란 과일이 보였다. 무슨 과일인지 이름은 잊었지만  한 개를 6000원에 샀다. 아주머니는 그것을 팔아서 기분이 좋은 듯, 지금은 귤이나 먹고, 그 노란 과일은 집에 가서 먹으라고 가지런하게 썰어서 비닐 봉지에 푹 집어 내 배낭에 넣어 주었다. 몇 번이나 먹어보려다 아주머니에게 들켜 혼나고 난 후, 무거운 그 과일을 배낭에 넣고 걷고 또 걸었다.

 

 

 

 

 

 

<중문 해수욕장 위에 있는 언덕으로 걸어간다. 아래 중문 해수욕장이 보인다. 물론 해수욕장으로 걸어갈 수도 있다.>

 

 

중문 관광단지에 있는 호텔을 여기저기 걸으면서 좋은 호텔은 다 구경한다. 호텔에는 주로 외국인들이 보였다.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고, 인도에서 온 듯한 까무잡잡한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가 해외에 관광가면 좋은 호텔 다 차지하듯이, 외국인들이 서귀포의 좋은 호텔을 다 차지한 듯이 보였다.

 

 

 

 

<로테 호텔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하야트 호텔에서 저녁 가든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최대의 구경거리는 존모살 해안과 해병대 길이다. 오후 4시경에 도착한 곳이 바로 오늘의 최고의 구경거리다. 주상절리는 아름답기는 하나 웬만한 사람은 제주도에 갈 때마다 보는 광경이다. 그러나 여기는 걷기가 불편하여 웬만한 사람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다. 앞에서 본 주상절리보다 덜 발달된 것으로 여겨지는 곳인데,  90도의 깎아지른 절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위에서 떨어진 바위가 밑에 즐비하여 해병대원들이 그 돌로 인도를 만들어 놓았다. 돌이 떨어질 것 같은 위압감에 가슴 조이다가, 그리고 또 한 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위의 절벽을 바라보다가, 귓가에 찬바람이 부는 것 같은 으시시한 느낌이 들어 도망치듯 바위 밑을 빠져 나왔다. 자세히 보면 마치 피카소의 작품처럼 여러 군상의 얼굴이 바위에 숨겨져 있다. 이런 절벽은 100미터 이상 펼쳐져 있다. 또한 중간에 굴이 있는데 올레길이 이 굴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볼 만한 모든 것을 갖춘 대단히 훌륭한 비경이다. 정말 제주도는 볼 것이 많은 곳이다.

 

 

 

 

<존모살 해안으로 해병대 길이 나 있다.>

 

 

 

 

<바위를 잘 보면 피카소의 그림처럼 생각하기 나름으로 여러 동물이나 얼굴이 나타난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바위 조각이다.>

 

 

 

 

<종착 지점인 대평포구다>

 

걷고 걸어서 대평포구에 도착했다. 풍림리조트에 전화를 하여 버스가 오는 지점을 물으니 대평포구가 아니라 대평리 버스 정류장이라고한다. 거기에 도착한 시각이 5시 10분쯤 되었고, 버스 정류장에 버스 오는 시각이 5시 25분이니, 15분 남았다. 항구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에게 물으니 정류장이 어디인지 몰랐다. 시간은 촉박하고 방향은 모르고 해서 속이 타 들어갔다.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어떤 집에 두 사람이 자동차를 고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류장을 물으니 자기도 이곳에 처음 왔다고 한다. 망설이고 있는데 아름다운 처녀가 바람처럼 어딘가에서 나타나 상냥하게 가르쳐 주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인물도 좋은 여자가 말도 상냥하다. 얼굴 한 번 보고 냅다 뛰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여 그 여자나 한 번 더 보고 올 걸 후회했다. 마침 풍림리조트라고  쓴 버스가 내 앞에 멈췄다.

 

 

그 날밤 풍림리조트 올레 방에는 네 명이 잠을 자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점잖은 듯 보였지만, 웬지 한 사람이 눈꼴이 시러웠다. 위통을 벗고 팬티 바람으로 여기저기 날뛰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 사람이 다 있는 법, 그러려니 하고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역겨움을 참아 넘겼다.

 

 

여기는 같이 묵는 사람들이 우정으로 끈끈한 그런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각자의 계획 하에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식사도 각자가 알아서 혼자씩 해결했다. 여기 풍토는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황토방이 진흙이라면, 여기는 뿔뿔이 흩어지는 모래와 같다.

 

 

풍림 리조트 앞에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김치찌개를 5000원에 시켜 먹었다. 내 앞에는 젊은 처녀 두 명이 4만원어치 제주 흑도야지를 먹고 배가 불러 일어나지도 못하고 어그적 거렸다. 혼자 다니다보니, 자유를 갖는 대신, 먹고 싶은 것 먹어보지 못하고 여행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적어도 두 사람이 와야 시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혼자가면 그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등이 내가 먹을 수 있는 전부다. 제주도에 오면 적어도 생선회와 흑돼지, 가능하다면 말고기까지는 먹어봐야 할텐데 말이다.

 

 

식사를 끝내고 리조트로 다시 들어오니 수퍼마켓에 여학생이 득시글 거린다. 수원여고 학생들이 수학여행 왔다. 방에 들어오니 다른 사람들은 피곤하여 잠잘 준비를 했고, 아까 팬티만 입고 서성이던 사람은 정장 차림으로 서귀포 시내에 간다고 나선다. 올레 여행 온 사람이 배낭 속에 웬 정장을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무엇하러 가는지 내가 물었다. 그는 밖에 나오면 밤에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 그를 따라 나설까 하다가 아까 그의 태도가 못마땅하여 그냥 잠이나 자기로 했다. 사실은 몸이 피곤하여 더 이상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전에 1월달에 풍림리조트에 왔을 때는 야외 호프집에서 맥주라도 마셨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 연일, 내 몸은 물에 젖은 솜 바지저고리처럼 묵직했다. 나는 내일 하루 더 있다가 모레 서울로 올라갈 결심을 했다. 그리고 몸이 제 자리로 돌아오고, 날씨가 좀더 풀리면 다시 올레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2009년 4월 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