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 10 "마두라이"
2014년 1월 12일 오후 5시 20분에 깐야꾸마리를 출발한 기차는 밤 10시경 마두라이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갖다 놓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식당이 너무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룸살롱보다도 훨씬 더 어두워 더듬거릴 수도 없는 듯이 보였다. 종업원은 네 명이나 되었는데, 손님 두 명은 이런 곳에서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마 금주 지역인데, 여기 호텔 음식점에서만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허락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여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컴컴한 방에서 더듬어가며 간단히 요기를 했다. 더듬더듬 밥을 먹으면서, 내가 혹시 어둠의 자식이 아닌지, 아니면 무슨 큰 죄를 짓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여기가 감옥이나 지옥이라면 탈옥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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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 마두라이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스리 미낙쉬 사원으로 갔다. 지난 밤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려서 도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나 다름 없었다. 휴지가 길옆에 거름 무더기처럼 쌓여있었고, 그 쓰레기 무더기에서 개와 소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호텔에서 약 100미터 내려가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낡고 볼품없는 낮은 시가지 위에 마치 거대한 절벽이 내 길을 가로 막는 듯, 아름다운 천연색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올라가 구름에 닿을 듯이 쭉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라고 할까, 아니면 자갈밭에서 진주를 캔 기분이라고 할까? 내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천연색 건축물에
한 동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인도북부에서 최고의 건축물이 타지마할이라면, 남부에서 최고의 건축물은 바로 이 미낙쉬 사원이라고 말한 Lonely Planet의 말은 너무나도 적절한 언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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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을 조금 자세히 보면 탑에는 수 많은 신과 악마와 영웅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Lonely Planet에 따르면 이 Minakshi Aman 사원은 1560년에 설계 되었는데, 그 역사를 말하자면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Meenakshi Aman은 세 개의 가슴을 갖고 태어났는데, 그녀가 결혼을 하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녹아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시바 신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자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고, 힌두교인들이 Meenakkshi와 시바 신에게 바친 건물이 바로 미낙시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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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근처에서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아무리 해도 전체적인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포스트 카드를 사서 스캔하여 올린다.>
사원의 내부에 들어가려면 카메라를 맡겨야 한다. 큰 카메라와 신발을 입구에 맡기고 표를 구입하여 처음 관문을 잘 통과했다. 그런데 두 번째 검사대에서 몰래 가지고 들어간 작은 작은 카메라(Sony RX100 II)가 적발되어서 퇴짜를 맞고 다시 원위치에 와서 같은 절차를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찍지 못할 바에야 뭐하러 들어가느냐고 말 하면서, 사원 근처의 골목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여기에는 핸드폰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고,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로만 사진을 촬영하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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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본 높은 건물은 사실은 사원으로 들어가는 대문이고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사원이 있었다. 6만 헥타아르가 된다는 사원 안에 들어가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힌두교인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 안에 조각되어 있는 정교한 건축을 보고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었다.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살아있는 코끼리였는데, 사람이 돈을 코끼리에게 주면 코끼리는 그 돈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주고, 자기의 코로 돈을 준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만져준다. 유격대의 숙달된 조교처럼 얼마나 능숙하게 잘 하는지, 저 코끼리가 가짜가 아닌지 아니면 속에 사람이 들어있지 않나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코끼리가 얼굴을 만지자 깜짝 놀라는 신도도 있고 만면의
웃음을 띄는 신도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코끼리가 안경을 만지는 바람에 안경이 바닥에 떨어져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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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티루말라이 나약 궁전이다. 겉은 번지르 하였으나 비둘기 똥이 사방에 흩어져 있고, 잘 관리되지 않은 건축물에는 낙서가 심했다. 중앙에 있는 광장에는 빈의자만 덩그러니 남아서 옛 왕국의 몰락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양쪽 통로의 기둥도 퇴색되고 페인트가 벗겨져 유적물을 이렇게 관리해도 되는 것인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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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옆에 있는 천주교 건물>
궁전에 다녀와서 호텔 근처에 있는 동네를 걸어서 돌았다. 한 아주머니가 풀을 팔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그 풀을 사서 옆에 있는 소에게 갖다 주었다. 그 남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이 풀을 사서 소에게 주는 것은 소를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조금이라도 이웃을 돕는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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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길거리에서 리어커 위에 임시 다림대를 만들어 숯불 다림질을 하고 있다. >
골목을 거의 다 벗어날 무렵, 한 남자가 촬영할 좋은 곳이 있으니 가보라고 말하면서 방향을 안내해 주었다. 그의 말을 따라 들어가니 허름한 집에 여러 개의 부엌문이 있어서 일종의 다가구 주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안을 들여다 보고 기절초풍할 뻔 했다. 서울 남산 아래에 있는 쪽방을 우연히 가본 적이 있지만, 여기 쪽방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방이었다. 낮인데도 어두워
실내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각 방에는 할머니 한 사람씩 들어 있었다. 어떤 방에 있는 할머니는 내가 들어와도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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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할머니는 더럽고 다 부서져 가는 문 앞에 나와서 두 손을 합장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귀신을 보고 넋을 잃은 듯이 보였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귀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귀신을 바라보는 듯 하였다.
아, 가난하게 늙는다는 것이 저런 것인가? 아, 헐벗고 굶주린다는 것이 저런 것인가? 흐트러진 흰 머리는 사방으로 향하고 있었고, 검은 얼굴에는 검댕이가 붙어 있는 듯 했다. 두꺼운 렌즈 너머로 할머니의 희미한 눈동자가 보일 듯 말 듯 하였다.
저 할머니에게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산다는 말이 저 할머니에게 해당되는 말일까? 인생이니 삶이니 보람이라는 말이 저 할머니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할머니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사진 찍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어떤 놈은 팔자 좋아 이런 사진을 찍고, 어떤 놈은 팔자가 기박하여 이런 사진을 찍힌다, 라고 생각할까?
"인도에 갔다오면 사람이 달라져서 온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비록 사람은 달라져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한국에서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보고 또 이 생각 저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는 것만은 틀림 없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이메일이나 핸드폰을 통해 "좋은 글, 좋은 생각"을 나에게 보내온다. "모여서 남을 흉보지 마라. 하루에 10분씩 웃어라. 누가 욕한다고
속상해 하지마라......................" 이런 "좋은 글"을 읽고 당신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이런 말들이 당신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인생이 무엇인지 묻지 마라. 저 할머니의 얼굴을 보라.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스스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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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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